MathGrammer 2017. 10. 31. 16:16

말을 탄 호위들은 5명뿐이지만 실라도 있다.

아까의 전투방식은 역시 도적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다.


「도, 도망쳐--!」


삼분의 일정도의 도적이 깃털장식의 남자를 버리고 달아났다.

나머지는 무기를 버리고 등뒤를 보인채 도망가고 있다.

반은 자포자기일 것이다.


호위들이 탄 말의 기세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말을 도적따위들에게 상처입게 하지 않았다.


도적들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베거나 도적들에게 마법을 쏘기도 했다.

실라는 도적들에게 파고들었다가 나와서 말을 타고 다시 달려들었다.


실라가 오른팔을 휘두르면서 옆을 지나가면 도적의 옆구리가 사라졌다.

다른 도적에게 말 위에서 공격을 받았을 때도 실라는 믿을 수 없는 싸움방식을 보여주었다.


창 끝을 잡고 그대로 말 위에서 도적을 들어버린 것이다.


「우, 우아아아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도적을 창으로 베어버린다.

다른 도적들을 상대할 때면 자연스럽게 2명 모두 날려버린다.


한순간에 도적들은 말에서 떨어지거나 목이 베어진다.

마상전투에서는 숙련도가 결정한다.


말이 낯선 도적들은 말을 잘 다루지 못 했다.

실라는 예외로 하더라도 기마끼리의 싸움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해줬겠다, 이 애송이가」


기마전은 나와 깃털장식의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싸움의 추세는 분명하다.


말을 내려서 곧바로 숲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

그 뒤로는 이미 여러명의 도적과 깃털장식의 남자밖에 남지않았다.


「각오는 됐느냐, 이 도적놈들아!」


내가 외치자 깃털장식의 남자는 히죽하고 대담하게 웃었다.


결투을 시작할 때의 준비였다.

분명히 나와 1대 1로 싸우겠다는 신호였다.


나에게는 활이 있다.

애초에 나는 귀족이 아닌 상대에게 결투를 받을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동료가 도망가거나 죽는 도중에도 남자는 당당하게 있었다.

나를 이겨도 호위들이 그를 죽일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의 행동이었다.


우리들을 멈춘 연설도 부하를 다루는 방식도 평민과는 달랐다.

귀족이나 몰락기사의 도적일지도 모른다.


무가의 집에서 자란 나에게는 무장의 도전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명예이고 자부심이다.


「좋아, 도전을 받아드리지! 모두, 끼어들지 마라!」


「감사하구운!!」


호위들도 모두 딘의 사람이다.

내 생각을 읽고 길을 열어주었다.

남자가 소리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


나도 검을 뽑고 양손으로 잡았다.

오른다리를 앞으로 내고 허리를 낮춰서 만전의 준비를 다했다.

동시에 활에도 의식을 집중했다.


활이 되었던 혈액이여, 무기가 되어라.

덩굴처럼 검을 감싸라.


붉은 활이 꿈틀거리며 형대가 무너진다.

활을 구성하고 있던 피는 그대로 형태를 바꿔서 검을 타고 올라간다.

검에 엉켜붙으며 소용돌이 치듯이 피가 얽힌다.


「우랴아아아!! 죽어라앗!!」


깃털장식의 남자가 칼을 옆으로 휘둘렀다.

상당히 빠르다, 역시 다른 도적과는 다르다.


나는 충격을 받아내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기량에서는 내가 위라고 생각하지만 체격에서는 남자가 유리하다.


속공으로 끝을 내자.

남자는 연격을 해왔다.


공격을 튕겨내면서 나는 피에 명했다.

검의 피여, 가시가 되어라.

자늑하게, 가시처럼 되어라!


결투에서도 스킬의 사용은 인정되고 있다.

미안하지만 마음껏 사용하겠어.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기는 중간에 칼에 얽혀있던 피가 튀어나간다.

그것은 마치 뾰족한 채찍이었다.


날아가는 진홍색의 채찍이 엄청난 속도로 남자의 오른팔을 뚫고 나갔다.

겨우 이것 뿐이지만 정면에서의 칼 싸움 도중에서는 유용하다.

칼의 예리함은 나빠지지만 방어는 어렵다.


채찍이 근육을 때리자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남자의 힘이 빠진 순간 나는 검에 힘을 담았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단숨으로 휘두른다.


의도대로 남자의 검은 튕겨지고 허공을 난다.

지면에 떨어진 검을 보고 남자는 무릎을 꿇었다.


양팔에서 피가 흐르고 아무것도 없는 손을 벌리고 있다.

싸움은 끝난 것이다.


나도 거친 숨을 내쉬었다.

검을 맞춰서 나는 확신을 했다.

평범한 도둑이 아닌 검술이었다.


「스트라우드검술이……아류가 아닌 것은 오랜만에 본다.」


「……넌 역시 귀족, 기사의 출신인가」


스트라우드검술은 넓은 대륙에 보급된 유파이다.

방어에 중점을 두고 상대의 동체가 아니라 팔이나 다리를 노리는 귀족용 검술이다.

아류가 많아 대륙에서도 정통 사용자는 적다.

내 가문은 정통파를 계승하고 있는 몇 안되는 귀족이었다.

이 짧은 시간에 알 수 있었던 것은 교양이 없다고 할 수가 없다.


「이미 한참 전의 이야기다. 어디의 출신인가 들어도 모를테니까」


「나는 대부분의 나라를 알고 있다」


「너가 세상을 알기도 전에 내 고향은 지워졌어. 필러제국에게」


「……!!」


설마 여기서 그 이름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필라제국과 딘왕국의 대전에서 내 아버지와 가신이 죽었던 것이다.


「그저 살아가다가 도적이 되고……빼앗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인가」


나는 검을 남자에게 들이댔다.

웅성거리는 마음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대답해라, 너의 배후에 누가 있느냐?」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는 자조하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눈은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아아, 방금전의 친절한 뱀파이어에게 들었다. 먹잇감이 올거라고」


「뱀피이어……?」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네들은 몰랐나보네. 녀석의 차림은 꽤나 있어보였지. 틀림없이 언제나 있는 귀족끼리의 괴롭히기에 우리들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의 의미를 듣고 나는 전율했다.

즉 이 도적단은 어느정도 묵인되고 있었단 말인가.


자존심이 높은 뱀파이어들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의 복수로 이녀석들을 사용하는 것인가.


「안의 귀족은 되도록 싱처입히지 말라고도 말했다고. 결과는 보시는 대로이지만」


정말이라면 흑막은 내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 숲에 온 것은 알마가 데려와서이다.


사전에 예정이 있던 것이 아니다.

식은 땀이 내 이마에 흐른다.


내가 뒷걸음질치는 모습을 보고 남자는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본다.


「남작님이여, 아무래도 짐작가는 곳이 있는가봐?」


「너가 이상한 말을 했을 뿐이다」


남자를 살린 채 아람데드왕국으로 데려가자.

어찌됐든 딘왕국의 귀족을 습격해서 전투까지 한 것이다.

여죄의 추궁과 엄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모두 진짜라고……믿지 못하겠는가?」


「그렇게 간단히 도적의 말을 믿을 순 없지」


남자의 눈이 음침하게 빛났다.

양손에도 힘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가……뭐, 어느 쪽이라도 괜찮아. 뱀파이어의 장난감도 이제 끝이다!」


남자는 허리에서 손가락 정도길이의 숨겨둔 단검을 꺼낸다.

멈출 틈도 없이 남자는 단숨에 자신의 목을 찔렀다.


쿨럭하고 남자의 입과 목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달려가지만 남자의 몸은 흔들리고 쓰러진다.

피가 하염없이 흘러 옷과 땅을 적신다.


옷깃을 잡고 들어올렸지만 소용없었다.

단검이 완전히 목을 꿰뚫고 있다.

피가 멈춘 이상 더 이상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그리고 나는 목덜미에서 이빨 자국을 찾고 말았다.

남자는 누군가에게 흡혈당했던 것이다.


불쌍한 남자일지도 모른다.

최후는 허망하게 자해한 것이다.


죄를 생각하면 사형도 불가피했겠지.

그렇지만 귀족의 이름을 말하면 살 가능성도 있었다.

살아갈 일말의 희망을 이렇게 간단히 놓아버리는 건가.

나는 허망해졌다.


먼발치서 서있던 실라가 천천히 다가왔다.

처음으로 가라앉은 듯한 어두운 모습으로 실라는 중얼거린다.


「아람데드에게 죄인으로 잡힌다면……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나는 아람데드의 사법을 잘 모르고 있다.

그래도 최근의 뱀파이어와의 친분을 생각하면 부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