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피에 입맞춤을. 20화 고민하는 엘리자
오후의 태양이 화창한 시간, 엘리자는 자신의 방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아까 확인했던 질의 <혈액조작>에 관한 보고서다.
딘왕국에는 스킬에 관한 것은 반드시 보고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만 서류는 시간이 걸릴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엘리자의 정신상태였다.
방심하면 눈물이 뺨에 흐를 것 같았다.
질과 헤어지고 엘리자는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젯밤 쓰러뜨린 것은 질이었다.
진심으로 안겨도 좋았었다.
비록 엘리스왕녀의 대신이라고 하더라도.
귀족같은 기분나쁨이 없는 질이 좋았다.
성실하고, 정의감이 있고……귀족사회에서는 고생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엘리자의 마음은 기울었다.
물론 장난으로라도 허락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엘리스 왕녀 측이 질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리자는 몇번밖에 엘리스왕녀와 만난 적이 없다.
그래도 질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질이 엘리자에게 기쁜 듯이 말했던 것이다.
「엘리스는 강하네, 검으로도 전혀 이길수가 없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도록 나도 강해지지 않으면 안되겠어」
엘리자는 가슴이 아팠다.
엘리스왕녀는 시중드는 남자에게는 호의를 보내지 않는 여자다.
오히려, 강한 왕녀를 휘어잡을 정도의 활동력이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 크롬백작은 브람왕국에서도 이름있는 변경백이기도 하다.
재력도 있고 일족이 힘을 모으면 왕족도 움직일 수 있는 대귀족인 것이다.
혼약파기의 장면을 꾸밀정도로 상당한 자만심이 있는 야심가일 것이다.
엘리스왕녀가 흥미를 가질 법한 귀족이었다.
재주가 있지만 눈치가 없고 무서울 정도의 무력과 마술을 가진 것이 엘리스왕녀다.
황태자의 형이 건재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왕위를 계승했을지도 모른다.
그 한편, 알마재상을 비롯한 그 일파들은 경계되고 있었다.
남작인 질이 혼약할 때도 알마파의 강한 지지가 있었던 것 같다.
얼른 사위를 붙여서 조용히시키자, 정치무대에서 멀리 떨어뜨려놓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엘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마재상이 질을 데려간 것은 만류하기 위해서이다.
엘리자도 울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미 딘왕국에 전서비둘기와 파발마의 수배를 해두었다.
그래도 딘왕국에서 여기까지 왕복 일주일, 대응협의에 며칠은 걸릴 것이다.
정식 지시가 내려올때까지 최저 보름은 걸릴 것이다.
엘리자로써는 한번 딘왕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질의 <혈액증대> <혈액조작>은 뱀파이어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매력적인 스킬이다.
잘못하면 유혹은 커녕 유괴당할수도 있다.
실제로 혼약이 보류되면 다른 뱀파이어가 다가올 것이다.
예를들면 알마재상이 질에게 접근한다든가?
딘왕국의 정상들도 뱀파이어의 성질은 잘 알고 있다.
고양이 앞에 고기를 내던진 것과 같은 것이다.
십중팔구로 귀환명령이 내려올 것이다.
질은 즉각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꾸욱하고 엘리자의 펜에 힘이 들어간다.
「실례하겠습니다~!」
노크도 대충하고 아에리아가 입실해왔다.
부탁해던 점심식사후의 홍차를 가져온 것이다.
은의 쟁판위에 파란 꽃을 수놓은 찻잔이 올려져있다.
지금은 혼자있고 싶었다.
떠올리기만해도 죽고 싶어지는 질과의 거래였다.
그래도 침대에 잠들어있기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잊어버리자고 질에게도 말했었다.
질이 돌아오면 알마재상과의 거래를 보고하러 올 것이다.
그때까지 마음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정도 내 상태를 알아차린 아에리아와의 티타임은 기분전환에 딱 좋았다.
엘리자가 서류를 치우면 아에리아가 책상위에 찻잔 세트를 깔았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에리아가 엘리자를 보았다.
「지금, 왕도에서 조금 소란이 일어나고 있어요」
아에리아는 이래보여도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딘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왠지……질님이 도적을 해치웠다는 거 같아요」
「네엣!?」
엘리자가 책상을 흔들며 일어섰다.
양손을 휘두르며 황급히 아에리아가 제지했다.
「아, 아니! 무사한 것 같은데!」
「질님이 습격당했다는 것인가요?」
어딘가의 뱀파이어귀족이 일찌감치 손은 댄 것일까.
뛰쳐나갈 듯한 엘리자의 손을 아에리아가 붙잡았다.
체온이 낮은 종족의 뱀파이어지만 아에리아의 체온은 엘리자와 다르지 않았다.
「가는 것은 괜찮지만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거 같아요!」
왠지 아에리아가 스-하-라고 티나게 호흡했다.
굳이 엘리자에게 따라해보라는 듯한 표정이다.
엘리자도 어쩔 수 없이 한번 호흡했다.
「엘프의 굉장하게 예쁜 아이를 데려온거 같아요, 질님……」
죄송하다는 듯이 아에리아가 중얼거렸다.
엘리자는 아에리아의 의도를 여러방면으로 헤아렸다.
어디서 엘프의 여자아이를 데려왔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알마재상에게 강요된 것일 것이다.
이미 포위망이 만들어져 있다.
엘리자는 흔들흔들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자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