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피에 입맞춤을. 24화 어둠속의 엘리스
만찬이 끝나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혼자있었다.
달은 아직 구름에 가려져있다.
침대에 앉으면서 나는 책상 위의 그릇에 의식을 돌렸다.
몇개의 그릇 위에 피로 만들어진 조각이 있다.
작지만 활이나 검, 말도 있다.
익숙한 것을부터 나는 만들고 있다.
엘리자에게서는 눈을 감고 집중하면 빨리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들었다.
급할 때가 아니라면 사전에 형태를 만들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무기가 아닌 방패를 시도했다.
가시가 나게하거나 적의 무기를 방해할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문제는 이미지다.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되어 버린다.
나는 그릇의 피를 만진채 둥근 방패를 떠올렸다.
먼저 기본형태부터 하나씩 만든다.
덜그덕하고 창문에서 소리가 났다.
제대로 닫아둔 창문이었다.
문득 눈을 열고 보면 나는 엎어질 뻔했다.
커튼 사이에서 새어들어오는 달빛사이에서 엘리스가 서있었다.
「에……에?」
말하자면.
엘리스의 은발이 환상적으로 흩날리고 있다.
어째서 여기에?
딘의 호위는 교대제로 빈틈없이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저택은 엘리자의 경보결계도 있다.
호위의 눈을 속여도 엘리자와 백업의 경비가 따라올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고도의 마술이나 스킬밖에 없다.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질」
잘못 들을리가 없는 엘리스의 목소리다.
차분하게 몸을 감싸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대로 엘리스는 침대의 옆까지 미끄러지듯이 걸어왔다.
평소의 가슴이 강조된 왕녀복으로써의 드레스는 아니다.
머리나 손목까지 가려진 검은 옷을 입고있다.
처음보는 엘리스의 옷이었다.
허리에는 회색의 가느다란 통을 차고있다.
잡담을 해야하는 걸까.
큰소리를 내며 엘리스를 내쫓아야한다.
머리로는 알고있어도 또 다른 내가 말을 걸고 있다.
엘리스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엘리스는 내가 만든 피의 조각에 손을 댔다.
「이게 알마가 말한 새로운 스킬? ……피를 조종할 수 있는거네」
엘리스가 말하자 조각이 흐물흐물 뭉개졌다.
강한 마력을 흘렸겠지.
손을 떠난 피는 순식간에 허물어져버렸다.
「저기, 질……아람데드에 언제까지 있을 거야?」
생각치도 못한 엘리스의 말이다.
아마 엘리스가 온 이유는 내가 떠나는 것을 막기위한 것이라고 직감했다.
솔직히 나쁘다거나 엘리스가 나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
「글쎄, 그리 길게 있을 생각은 없어」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일단 솔직하게 나는 답했다.
엘리스가 우아하게 내 옆에 앉았다.
시선은 내가 아니라 정면을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빨리가는 게 낫겠네. 브람왕국군이 오니까」
「뭣……!」
놀라움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크롬백작이 준비했던건가?
「내 추측이지만 아마 리위아상 기사단이 올거야」
그 이름은 나도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네대전의 선조가 일대일의 싸움에서 리위아상 기사단의 단장을 이겼던 것이다.
내 가문에서도 최상의 무훈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의 명문, 정예라고 할 수 있다.
엘리스가 나에게 다라온다.
눈동자에는 차가운 분노가 일렁거렸다.
이 거리, 혹시 엘리스가 나에게 덤벼든다면 난 저항할 수 없다.
검으로도 마술로도 나는 엘리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알마는 너를 아람데드에 붙잡아 두고 싶어해……. 나에게 매달리라고 말했었어」
나는 잡은 시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자각했다.
엘리스가 찾아온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반대로 하려고. 알마가 정말 싫으니까. 그녀가 만든 이 나라도 하찮은 규칙도 나에게는 필요없어!」
「그것, 은……」
이만큼 격하게 말한 적은 없었다.
현상황에서 불만인 것은 나와의 혼약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람데드를 좌우하는 알마에게 반발하는 귀족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건국에서 수백년, 계속 재상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원망이나 증오가 모이는 것은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엘리스가 내 뺨에 오른손을 댔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상냥함이었다.
「크롬백작은 나에게 약속해주었어. 브람왕국과 함께 나라를 바꾸라고」
천천히 손을 움직이면서 엘리스가 내 뺨을 쓰다듬었다.
「레날 오라버니의 이야기는 알고있어?」
언뜻 들은 기억이 있다.
지금의 아람데드 황태자의 형으로 질병치료를 위해 왕도를 오랫동안 떨어져있다는 인물이다.
5년이상, 정식무대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당연, 면식은 없었다.
나는 작게 엘리스에게 수긍했다.
「알마와 크게 싸우나서 얼마 지나지않아 왕도에서 모습을 감췄어. 나에게 정말 잘해주었던 오라버니였는데」
엘리스가 입술을 깨문다.
「아버님도 알마의 말하는 대로야. 별수 없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는걸. 알마의 의사를 자신의 의사라고 생각할 정도로」
뜻밖의 엘리스의 고백에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엘리스의 눈동자의 빛이 더욱더 냉혹함을 더한다.
나는 엘리스의 멈추지 않는 말을 듣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크롬백작은, 이미 죽은 것 같아. ……알마는 너에게 매달린다면 마지막 이별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