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피에 입맞춤을. 25화 입맞춤으로 이별을.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크롬백작이 이미 죽은것인가.
어떻게? 아니, 목숨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은 한명뿐이다.
카시우왕이 처단한 것이다.
변경백인 크롬백작을 죽이면 정세는 긴박하게 될 것이다.
그정도로 카시우왕의 분노는 컸던 것이다.
그것보다도 믿지 못하겠는 것은 죽은 크롬백작에게 엘리스가 만나러 가고 싶다는 것이다.
엘리스는 진심으로 크롬백작을 사랑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뭐였을까.
엘리스가 내 방에 온 것은 크롬백작과의 이별을 위해서이다.
게다가 알마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서까지이다.
완전히 바보취급을 당했다.
알마와의 거래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매달리라고 했겠지.
노예의 가게와 실라의 일을 생각하면 싫어도 알게된다.
엘리스의 검은 옷은……크롬백작을 애도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나한테 없다는 징표이다.
「증혈약으로 스킬의 대신을 했다고 알마는 말했지만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말이야. 그가 지위도 있고 야심이 있었어」
방의 공기가 얼어붙은 것 같았다.
엘리스의 목소리는 불길하게 부드럽다.
「어때……내가 싫어졌으려나, 질……」
엘리스가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했다.
내가 정말 바랬던 얼굴이었다.
부드러운 들판의 향수가 내 코를 간질인다.
그래도 지금은 내 마음이 찢겨지고 있다.
결국, 사랑받지 못했다.
운으로 좋은 스킬을 받아서 손에 넣은 혼약자의 지위다.
물론 몰락귀족인 나에게 잘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좀더 빨리 말해줬으면 했다.
만찬회에서 혼약파기같은걸 하지 않고 거절했으면 좋았을텐데.
창피당하지 않고 끝났을 것이다.
「……싫어질 것 같아, 엘리스」
내 입에서 중얼거린 말에 놀랐다.
엘리스의 강함이 눈부셨다.
나에게는 없는 분방함도 부러웠다.
엘리스를 위해서라면 섬기는 듯한 결혼생활이라도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확실히 알겠다.
전부 신이 잠깐 보여준 꿈같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아람데드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엘리스에게 끌리면 안됐었다.
「드디어 나를 미워해주는구나?」
내 눈앞에서 엘리스의 은발이 있다.
닿는 것 조차 송구한 혼약자의 머리카락이다.
엘리스가 뺨을 내 얼굴에 댔다.
놀랄 만큼 차가운 피부다.
반대로 내 안에서 분노와 후회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엘리스에게 향한적 없던 감정이다.
「엘리스, 나는 너를 잘 모르겠어」
「서로 빼앗는 사랑이 우리 뱀파이어들의 본질이야. 크롬백작은 그것을 이해했어」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그렇겠지……. 유감,이네」
엘리스의 겨울같은 한숨이 내 귀에 걸린다.
말과는 달리 엘리스는 실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엘리스와 내 진짜 마음의 거리를.
「저기、지금 여기에서 나를 안아――」
「말하지마!」
엘리스의 귓가에 나는 외쳤다.
알고있다, 엘리스의 값싼 도발이라는 것은.
나는 엘리스의 양어깨를 쥐고 떨어뜨렸다.
엘리스는 힘을 뺀 채였다.
열이 내 몸을 달궜다.
어디까지 나를 거슬리게 바보취급을 할 생각인걸까.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거짓말으로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엘리자를 상처준 이 방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렇게, 크롬백작이 좋아하는 거야? 죽은 그 남자를 위해 거기까지 할 수 있어!?」
「어、그래」
엘리스가 일체의 망설임없이 말했다.
마음의 불이 불길이 되어 나를 달궜다.
「그렇다면……이제, 끝내자. 말할 필요도, 없어!」
나는 미련을 끊어내듯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눈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어젯밤, 혼약파기이전에 전부 끝났었다.
뒤따라갈 수 없는 상대였던 것이다.
뒤는 딘왕국과 아람데드왕국이 알아서 논의할 뿐이다.
당분간 곤란하지 않을 정도의 돈은 손에 넣었다.
나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엘리스는 속은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신분에 맞지 않는 상대에게 호의를 건넨 내가 어리석었다.
「딘왕국관할의 저택에 무단으로 들어온 것은 불문으로 해줄게. 돌아가」
「그렇게……잘됐어」
엘리스도 침대에서 손을 짚고 일어섰다.
그 얼굴에는 사죄나 반성의 빛은 없다.
기묘하게 엘리스는 개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내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너에게 계속 사랑받고 있어서는 너무 괴로우니까」
그렇게 말하고 엘리스는 슥하고 나에게 키스를 했다.
반응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빨랐다.
차갑지도 않고 사람의 따뜻함이었다.
엘리스의 차가움이 그녀의 마력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인사같은 가벼운 키스였다.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그 키스의 순간에 방문이 엄청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누군가가 파괴하는 듯이 연 것이다.
「질님, 무사하십니까!?」
이 무슨 타이밍인가.
엘리자와 호위가 안색을 바꾸며 뛰어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