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피에 입맞춤을. 29화 실라의 어머니, 세룸
엘프의 마을로 향한지 사흘이 지났다.
길은 순조로웠다.
도중 몇번 몬스터에게 습격당했지만 모두 상처없이 격퇴할 수 있었다.
블랙 울프, 버서크 혼과 같은 딘왕국에서도 볼 수 있었던 녀석들이었다.
대처법을 알고 있었고 땅이 황폐해서 그런지 수도 많지 않았다.
뱀파이어도 쫓아오지 않았다.
왕도를 떠난지도 사흘이 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큰 소동이 났을 것이다.
그래도 추적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들을 잊어버린것일까?
그렇다면 고맙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엘프의 거주지역을 넘으면 딘왕국은 금방이다.
다시 말하면 거기까지 쫓겨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휘청하고 말에 탄 엘리자의 몸이 흔들린다.
같은 훈련을 받았다해도 궁정마술사이다.
황야를 달린지 며칠간 계속 말을 타는 것은 상정외였을 것이다.
게다가 왕도의 탈출부터 지금까지 엘리자는 계속 움직였다.
오늘은 일찍 휴식을 하는 편이 좋겠다.
「모두들, 저 수풀에서 쉬고가자!」
나는 크게 외치고 가까이 있는 수풀을 가리켰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더 가야하는 것이……?」
엘리자가 역시나 돌아보며 안된다고 말했다.
「아니, 추격해오는 것 같지도 않잖아……엘프의 마을에 얼마 남지않았어. 오늘은 쉬자」
나는 조금 강하게 말했다.
후드를 쓴 엘리자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죄송합니다」
「괜찮아……신경쓰지마」
노을이 지평선에 걸리고 황야를 살짝 비춘다.
어디를 봐도 불모지다.
내가 알고 있는 딘왕국의 토지들보다 나무가 적고 물도 부족하다.
유일하게 많은 것은 몬스터가 환금성이 높은 종류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왕도를 떠나 실제로 달려보니, 생활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투구를 벗고 실라의 모습을 보았다.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것이 조금 꺼림칙했다.
엘프의 사정은 실라나 아에리아만 알고 있다.
나와 엘리자는 그것을 들을 뿐이다.
엘프의 뱀파이어에 대한 감정은 좋지는 않을 것이다.
딘왕국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사람이 살기에는 가치가 없는 토지이다.
연기가 없는 모닥불을 쐬면서 나는 엘리자의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한다.
역시 엘리자는 꾸벅거리며 졸고있다.
깊은 숨을 내쉬며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눈은 감고 있지는 않지만 체력에 여유가 없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있다.
나는 엘리자의 옆에 앉았다.
손에는 모닥불로 달군 컵이 있다.
컵 안에는 흐물흐물 녹은 초콜렛이 있다.
「이거 마셔」
「……별로 남지 않은, 몇 안되는 음식입니다」
엘리자가 작게 손을 흔든다.
나는 꿋꿋이 컵을 엘리자의 입가로 가져갔다.
「됐으니까 마셔」
나는 의도적으로 눈썹을 치켜세우며 몰아붙였다.
엘리자는 쓸데없이 무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일에는 충실하고 있지만 자신의 일은 뒤로 미루는 편이다.
「……네」
조용히 다가와 엘리자가 초콜릿을 마셨다.
휴대식량이다 맛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도 말린 빵이나 말린 고기만을 며칠간 먹은 상황에서는 별미라고 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기분전환, 체력회복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문득 둘러보니 내 앞에 실라가 서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매달리는 듯한 약간 울듯한 목소리다.
「부탁할게 있습니다……마을에 도착하고 나서인데」
실라가 말을 끊는다.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듯 하다.
그것뿐이지만 조금 알 것 같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말해봐」
「촌장에게……어머니에게, 한번이라도 좋으니 만나고 싶습니다」
무릎을 굽히며 나에게 눈을 마주친다.
침착한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어느 말보다도 감정이 실려있다.
엘리자는 그대로 초콜릿을 마시고 있다.
나에게 맡기겠다라는 뜻이겠지.
「물론, 상관없어. 오래걸리지만 않는다면……」
원래는 해방해라고 했지만.
가는길에 들르는 것 뿐이다.
「어느 누구라도 가족과는 만나고 싶은거야」
누구라도. 나는 말했다.
내 아버지는 전사하셨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다.
가족은 이제 여동생밖에 없다.
실라는 아마 평생 못 볼 상황이었겠지.
분명 만나고 싶을 것이다.
「으읏!?」
아에리아가 말린 고기를 물면서 흘끗흘끗 주변은 둘러본다.
실라와 엘리자도 거의 동시에 뭔가에 반응했다.
「……주위에, 누군가 있습니다」
엘리자가 목소리를 낮추고 전했다.
마침내 뱀파이어가 온건가.
밤이라고는 하지만 이쪽에도 꽤나 정확한 감지능력이 있다.
나는 침착하게 검에 손을 댔다.
단숨에 우리들사이에 긴장감이 감돈다.
그 안에서 실라가 눈을 감고 일어섰다.
팔을 펴면서 뭔가를 환영하는 것 같다.
「……엘프입니다.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엘프라면 온건하게 마쳐야 한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실라에게 지시를 내렸다.
「우리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전해줄래?」
「……알겠습니다」
실라는 눈을 감고 천천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극을 상연하는 것 처럼 맑은 목소리가 울린다.
「저는 올리브 지팡이 촌장의 딸, 실라입니다. 사정이 있어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약탈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해해주세요」
자기소개와 내방의 목적을 실라는 간단하게 전했다.
엘리자도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어둠속에서 반응이 있었다.
「실라……! 정말로 실라인가요!?」
참고있는 듯한 표정, 그리고 모닥불을 반사하는 듯한 금발이다.
실라의 모습을 한 여성이 말을 타고 어둠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의 뒤에서 말을 탄 엘프가 계속 나왔다.
실라는 알고있는 엘프들인 것 같다.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아, 실라……!」
여성이 감격해서 입을 손으로 덮는다.
혹시, 이 여자가!?
「어머니!」
「이게……현실입니까……? 꿈이……!!」
대답하는 대신에 실라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언제나의 무표정은 그곳에는 없었다.
기쁨이 온 몸으로 표현하며 여성에게 안겼다.
여성도 그것을 힘차게 받아들였다.
잠시동안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의 소리와 말의 울음뿐이었다.
노예가 되어서 헤어졌던 딸을 다시 만난 것이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런데 만난 것이다.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설마……」
잠시 후 실라를 안고있던 힘을 풀고 우리들을 향해 돌아섰다.
「이름을 대는 게 늦었습니다……제 이름은, 세룸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울먹거리며 세룸이 우리들의 신분을 묻는다.
「딘왕국의 질-화이트 남작입니다」
거리낌없이 나는 이름을 댔다.
엘프들도 호위들도 하나같이 흠칫했다.
감추는 것보다 자신을 분명히 밝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차피 통행의 허가와 식료를 조달해야한다.
「분명, 퍼레이드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그들중에서 한명이 말했다.
엘리스와의 약혼 퍼레이드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실라도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미심장하게 세룸이 중얼거린다.
그 모습에는 큰 당혹감과 결의가 섞여있다.
「……먼저, 마을로 안내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죠」
준비를 하고 엘프의 뒤를 따라간다.
아에리아는 엘프가 불편했는지 웅크리고 있다.
경계를 서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럴필요 없다고 전해야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꽤나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엘프들은 몬스터의 세력권을 제대로 파악하며 나아간다.
세룸은 촌장이지만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마술사이기도 하다.
몬스터 사냥도 꽤나 자주 나가고 있는 것 같다.
꼬박 하루정도 걸려서 엘프들과 함께 황야를 지나 계곡에 도착했다.
양측은 날카롭게 깍여있는 절벽이다.
바위가 드러나있고 풀은 전혀 나있지 않다.
모래먼지가 춤추고 황혼이 퍼진다.
하늘 아래 작은 달이 떠올랐다.
「아아……!」
실라가 그리우면서 감탄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황량한 곳에 몇개의 초가집이 보였다.
마을은 계곡안에서도 넓은 곳에 세워져있었다.
대약 백채정도 있다.
인구는 수백명라고한다.
목조뿐만 아니라 벽돌로도 만들어져있다.
그렇지만 왕도에서 봤던 장식같은 것은 없다.
아직 마을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입구에 파수꾼이 몇명 서있었다.
입구라고 해도 문같은 것은 없다.
쉽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나무 울타리가 있을 뿐이다.
「아무쪼록, 안으로……정말 변변찮은 곳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