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번역/붉은 피에 입맞춤을 ~엉터리 능력으로 인생역전~

붉은 피에 입맞춤을. 2장 7화 까마귀의 새로운 사용법

MathGrammer 2017. 12. 24. 19:00

아침이 되었다.

안개는 변함없이, 숲에 섞여있다.

떠오르기 시작한 광경이 스테인글라스에 반사되듯이 반짝였다.


나는 <신의 눈동자>를 가슴에 넣고 말에 올라 혼자서 숲을 거닐었다.

만약을 위해 <신의 눈동자>는 갖고 있었다.


숲에는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벌레의 울음소리도 짐승의 발소리도 없다.


한마리의 까마귀의 쉰소리만 들린다.

그 외에는 인간과 말의 숨소리뿐이다.


미자리 왈, 안개속에서는 생물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치, 누군가가 쫒아낸 것 처럼.


나는 어젯밤에 네루바와 처음 만났던 곳까지 갔다.

그곳에는 무수한 유령들이 있었다.


창색한 연기처럼 하늘을 떠다니고 있다.

네루바처럼 등뒤에 날개가 달려있지만 얼빠진 얼굴이 인상적이다.


유령은 생기를 빨아들이는 저급의 언데드다.

무덤이나 전투가 있는 뒤에 극히 드물게 생기는 녀석들이다.


그 유령이 수십마리정도 숲속에 있다.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광경이다.


유령 무리의 중심에서 네루바가 있었다.

눈을 감고 그저 서있었다.

그가 공격당하지 않는 것을 보면 네루바가 불러낸 유령인 것같다.


등뒤에 한기가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말을 내렸다.

네루바가 눈을 천천히 뜨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유령들은 말그대로 연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듯이 사라졌다.

엘프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라고 해두었다.


나는 혼자서 네루바에게 다가갔다.

네루바는 나를 보고는 상냥하게 웃었다.


「너, 혼자서 온거야? 용기있네, 나는 그런 사람 좋아해!」


「……어제는, 푹 쉬지 못했으니까」


「그렇네, 나도 너와는 이야기나누고 싶었다고……생각했어. 너, 질남작이지? 유명인이잖아」


네루바는 그대로 앉아서 풀을 통통 두드렸다.

나도 아침 이슬이 서려있는 풀위에 앉았다.


거리는, 꽤나 가깝다.

칼을 뽑아들면 순식간에 벨 수도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네루바는 자리에 주저앉아 느긋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뭐라고 하면 되려나. 모두를 살리고 싶을 뿐이야. 싸울 생각은 전혀 없다고」


뺨을 긁적이며 네루바가 말했다.


「그게 당연하겠지? 되살리는 주제에 다른 사람을 죽인다니 모순되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 자리에서, 네루바는 나를 쳐다보았다.


「질남작, 너도 알고 있잖아……네 부친은, 필라제국과의 싸움에서 전사했지. 나도 그래, 마을을 필라제국때문에 잃었지」


그렇다면 저 유령들은 그 마을에 있던 사람들의 혼인가.

지금도 네루바는 마을의 동포를 데리고 다니고 있다.


네루바는 뭐라고할까ーー순진하다.

수줍은 표정으로 내 기색을 살펴보면서 말을 이었다.


나와 별로 차이나지 않는 나이에 그 나이다운 태도이다.

ーー나는,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부럽다.

어디에서나 볼수있는 평범하게 명랑한 소년이었다.


「만약 아버지를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고해도 나는 하지 않을거야」


「……왜?」


「죽으면 사람은 변하는거야ーー이미, 죽기전의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어. 분명  이상하게 될거야」


네루바는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잘 알고있네……네 말대로야. 그래도 되물리는 수는 없어. 나는ーー사령술에 푹 빠져버렸으니까」


나는 앉은 채로 손과 발의 움직여서 네루바에게 더욱 다가갔다.

확신을 하나 가슴에 안고.

나에게는 네루바가 원래부터 악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용당하는거 아냐? 그란초처럼……!」


네루바의 얼굴이, 흐려졌다.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을, 귀에 담았다는 듯이.


까마귀가 한번 음침하게 울었다.


「어떻게 그란초의 이름을 알고 있는거야……있을 수 없어, 불가능하다고」


그래, 그란초는 납치한 상대한테만 이름을 댄다고 말했었다.

동료라면 알고있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딘의 사람인 내가 알고있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다.


「그한테서 직접 들었어」


나는 망설임없이 말했다.

즉, 그란초의 지배를 벗어났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네루바의 얼굴이, 뒤틀린다.

기쁨과 당혹감이 뒤섞여있는 얼굴이다.


「그러니까……어쩌라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잡담을 나누는 것 뿐이야. 전부 끝날 떄까지ーー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어」


네루바의 역할은 발묶기다.

그리고 우리들은, 하루빨리 돌아가야만 한다.


이제, 시간은 없다.

미자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해봤다고 했다.


이제 확인해볼 것은 한가지밖에 없다.

그란초의 경우에는 알아차리는 것이 늦어서 죽을 뻔했다.


사령술을 사용하는 것은 본체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모습은 다르지만ーー아니, 그란초도 마찬가지였다.


네루바에게서 유령의 이야기를 캐냈다.

순순히 그는 이야기했다.

용서 받지 못하는 사령술에 대한 기대를 무심코 입에 담았다.


어제 이름을 댔던 것도 갑자기 나타났던 것도 이상했다.

그 미자리와의 추격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을 노출시켰다.

마치 자신을 노리라는 듯이.


그런데도 너무나도 소극적인 태도, 그란초와는 전혀 다르다.

마치, 해방된 후의 크롬백작과 같았다.

사령술의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규칙도 똑같을 것이다.

역시 그의 힘의 원천은 처음 만났던 이곳에 있을 것이다.


나는 일어서서 숲 속을 둘러보았다.

안개속에서 까마귀가 울며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다……안개를 만들어낸 것은」


아까부터 날개짓하며 울고있는 까마귀가 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고 있다.


이 안개속에 있는 유일한 뭔가.

그란초와의 싸웠을 때처럼――사람의 몸 이외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 안개숲에서 뭔가 번뜩였다.

굳이 굳힐 필요는 없었다ーー피를 사용하는데.


애초에 피는 액체다.

오른팔을 내밀자 계속 피가 흘렀다.


이제 검이 없어도 체내의 피를 작은 칼의 형태로 체외로 내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강하게 이미지했다.

눈 앞의……그, 안개가 붉게 물드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