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백작이 말라와 대면한 것은 피양의 의식이 처음이었다.

알마는 브람왕국 귀족인 크롬백작을 문답무용으로 죽여버렸다.


크롬백작은ーー모든 것을 발설하려고 했다.

죽을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노인의 계획도 교단의 관한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없었다. 마치 금지된 것처럼.


결국 피를 흘리고 절명한 크롬백작에게 브람왕국에게 넘겨진 후 갑옷과 검이 쥐여졌다.

저주받은 교단의 지보이다.


크롬백작은 그렇게 어둠에 말려들었다.

낯익은 노인의 비명이 허공에서 메아리친다.


「크하하하하하, 내 이름은 그란초……크롬백작이여, 억울한가? 아쉽게 되었구나……조금만 더 있었으면 가능했을텐데」


「……너는……?」


「네 육체를 사용하고 혼을 연료로 삼을……흠, 브람인의 육체는 좋군, 역시 상성이 좋아. 나도 예전에는 브람에서 마술사로 지낸데다 이 몸은 이미 세공을 해뒀으니……!」


그 때 크롬백작은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의 정체를.


죽기전에 말할 수 없었떤 것은 이녀석때문이라고.

그리고ーー교단이야말로 모든 흑막이라는 것도.


「무엇을 위해……이런, 짓을……」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대를 담아 외쳤다.

마치 성취의 순간이 왔다는 듯이


「<신의 눈동자>, 그리고 왕가의 피를 갖기 위해서다……! 양측이 모여야 비로소 각성은 시작되고 목적은 달성된다. 엘리스왕녀가 없으면 <신의 눈동자>는 사용할 수 없거든」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크롬백작의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이 크롬백작을 뒤덮어갔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ーー인지가 미치지 않는 존재라고 본능으로 느꼈다.


「엘리스왕녀가 아니라 그녀의 아이여도 되지만……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 게다가 프라이드가 높은 여자니까」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흡혈은 복잡한 의미를 갖는다.

피를 빤다는 뜻은 여러단계가 있다.


본래의 흡혈은 목덜미에 이를 꽂는 것으로 성행위와 동일하다.

한편 아에리아처럼 피를 건네기만 하고 이를 통한 흡혈이 아니라면 가벼운 포옹과 같은 것이다.

미자리도 분명 원한다는 것의 뜻이 아에리아와 같은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뱀파이어의 흡혈은 어느 의미에서 상대를 아래로 본다는 뜻이다.

목에 직접 이를 세우는 것은ーー뱀파이어에게 있어서 반정도 상대를 지배하는 의미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것이 뱀파이어에게 있어서의 총애의 표시였다.

그리고 반대로ーー뱀파이어에게 피부를 허락하는 것은 상대를 위로 인정하는 것이다.

흡혈이 없는 단순한 성행위는 뱀파이어에게 굴욕적이라고 여겨진다.


그 미묘한 차이가 엘리스의 태도에서 나타난다.

사랑은 있어도 최후의 일선으로써 왕녀의 자존심이 남아있었다.

정식 혼약자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허락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뭐, 상관없지……약간 돌아다닌 다음에 아람데드왕국으로 간다. 동지가 준비를 마치는 동안 엘리스왕녀를 꾀어내는 거다. 네놈의 얼굴을 본다면 엘리스왕녀도 기뻐하겠지!」


「으……크아……」


크롬백작은 신음하며 고민했다.

이제 제대로된 사고를 할수가 없다.


칠흑같은 어둠이 크롬백작을 뭉개려하고 있다.

……혼이……혼이 불타는 것같다!


「레나르이 엘리스왕녀에게 맡겼던 <신의 눈동자>의 한부분, 그것도 회수한다면 네놈의 역할은 끝이다……크하하하하하하!!」


크롬백작은 약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그란초는 혼을 갉아먹는 악마라고.


자신의 인격, 혼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엘리스, 그리고 여동생도 휘말리게 할 것이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여동생인 로아가 호출되었다…….

제발, 어떻게든……그것만은…….


하지만 크롬백작의 의식을 깊게 잠들어갔다.

이것이 크롬백작의 최후의 의식이었다.


……내 의식도 같이 끌고들어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문득, 장면이 바뀌었다.

뭔가 겹치듯이 본적이 없는 새로운 장소가 되었다.

어딘가 호화스럽지만 어딘가 그늘이 있는 방이었다.


마르고 지친 모습의 은발 뱀파이어의 청년이, <신의 눈동자>을 같은 은발의 아름다운 소녀에게 건네고 있었다.


아, 알겠다.

예전에 많이 본 얼굴이다.

저 사람은 아마도 몇년전의 엘리스다.


그렇다면 저 청년이 엘리스의 오빠인 레나르……인가?

엘리스와 같은 은발이니 맞을 것이다.


이것은 <신의 눈동자> 자신의 기억인가.

과거에서 더 과거로 가는 것인가.

위험하다, 나는 직감했다.


이대로 점점 더 과거로 올라가는 것은.

하염없이 계속 거슬러 올라간다면…….


어떻게 되는거지? 1000년분의 기억이 내 머리속으로 들어오는 것인가!?

견딜 수 있을리가 없다.

내 자신의 정신이 이상하게 될 것이다.


나는 머리 한 구석에 혼신의 힘을 담았다.

이제 됐어, 여기까지 보여줬으면 됐어!!

충분하다고!


「하아……하아……!」


나는 거칠게 <신의 눈동자>를 목걸이에서 빼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다.


왼손에는 <신의 눈동자>를 쥐고 있다.

위험했다.


어떻게든, 늦지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지 않았다.


<신의 눈동자>는 뭔가 변하지는 않았다.

붉은 빛도 발하지 않고 있다.


「각성……한게 아니었나」


그란초의 싸움이 끝나고 의식을 읽은 후에도 이런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황야를 지나온 지금도……이다.


빈도가 너무 잦다.

이런 것을 매일 당하면 버틸수가 없다.


「몸 가까이에 놓고 자는 것은 그만두자……」


나는 침대 옆에 있는 주머니에 <신의 눈동자>를 밀어넣고 다시 누웠다.


희미하게 벌레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까지 약간 시간이 있다.


아직 잘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그 때 뭔가가 떠올랐다.


엘리스는ーー얼마나 긴 시간동안 <신의 눈동자>를 갖고 있었지?

엘리스도 지금의 나와 같이 몸에 지니고 다녔었나?

꿈속에서 누군가의 기억을 지켜본 것인가?


마지막에 만난 엘리스는 뭔가 이상했다.

크롬백작과의 이별때문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에게 안겨도 된다고 말하는 듯한 말투였다.

……정말로 내가 알던 엘리스가 맞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것이 엘리스의 본성이었나?

뭔가, 바뀐게 아닐까.


크롬백작을 사랑했던 엘리스.

나에게 안겨도 좋다고 말한 엘리스.


전혀 닮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신의 눈동자>에 의해서, 무엇인가가…….

누군가의 기억, 정신에 영향받았다는 것이…….


그래, 있을 수 있다.

<신의 눈동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확실히는 모른다.


그래도ーー그만두자.

<신의 눈동자>를 지니고 잠을 자면 알아낼 수 있지만.

모든 수수께끼, 교단의 비밀도 과거의 모든 것을 명백하게 밝혀낼 수 있지만.


그것은, 너무 위험하다.

인간이 손을 대서는 안되는 영역이 아니다.

깊이 관여하지 말라고 엘리자가 말한 대로이다.


설마 꿈속에서 이렇게 파고 들어가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에게도 얼른 봉인하고 손에서 떠나보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슴 속에 결의를 새롭게 다지며ーー나는 다시 한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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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ㅎㅎ

요즘에는 게임도 별로 안땡기고 책만 계속 읽게 되네요.

조만간 읽은 책 리뷰도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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