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제대로 자지 못했다.

연금 상태에 있으니까ーー제대로 못 자고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눈을 뜬 나는 머리맡의 손거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뱀파이어라면 어두운 곳에서 거울을 볼 수 있다.


달빛이 옅어서 잘 안보이지만 거울을 본 나는 안도했다.

아아, 아직 엘리스……엘리스-아람데드로 있을 수 있었어, 라고.


모든 것은 레나르 오빠에게서 붉은 보석을 받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5년전이었으니까 나는 10살이었었다.


처음에는 아련한 꿈정도 였었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을 계속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몇년정도 지나자 꿈속을 더 깊게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갔다.

왜냐고 묻는다면 답은 단순했다.


꿈을 꾸면서 여러 사람의 혼에 접촉하는 것으로 나는 점점 더 강해졌다.

검술도 마술도 눈부시게 향상되고 있었다.


붉은 보석에서 얻은 경험이 나를 단련시켰다.

지금은 아마 이 나라에서 3번째정도로 강할 것이다.

첫 번째는 알마, 두 번째는 알마의 복심인 미자리다.


그렇다, 이래도 나는 알마에게 아직 닿지 않았다.

나도 레나르오빠도 알마를 몰아낼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추방되기 전에 레나르오빠는 사령술에 빠져들었었다.

그 때문에 세자의 지위를 박탈당해 왕도에서 쫓겨났다.


「아, 어떻게든 한개정도 뺏을 수 있었어……그래도 고작 그것뿐이야. ……이것은 아직 잠들어있지만……항상 간직하고 있어. 너에게 힘을, 우리들에게 미래를 줄 물건이니까」


왕도를 떠나기 직전에 붉은 보석을 건네준 레나르오빠는 상냥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 엄청난 선물이었다.


충분히 강해졌을 때 나는 레나르오빠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힘이 사령술에 의한것이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은 손해다ーー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알마를 제거하고 레나르오빠를 되찾는다.

300년동안 알마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내 딸과 손자까지 알마가 생각하는데로 이용당할 수는 없다.

그딴 하찮은 규칙따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아람데드 전부를 되찾기 위해서 나는 꿈속을 계속 파고들어갔다.


한눈 팔지않고 과거의 싸움을 분석했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싸움을 체험했다.


그리고 드디어 1년전부터 <신의 눈동자>의 기억의 처음까지 올라갔다.

그 때에는 붉은 보석이 <신의 눈동자>라고 불리는 유물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에스텔>과 만났다.

어둠 속, 신화의 끝에서, 어떤 존재와 영혼을 접촉시켰다.


이 <에스텔>과의 만남을ーー해서는 안됐다.

처음으로 나는 후회했다.


나는 침식되기 시작했다.

<에스텔>의 앞에서는 나는 벌레와 같은 존재였다.


내 의식, 감정이 뒤틀려갔다.

조용히, 천천히, 하나씩.


질ーー그 선량하고 소극적인 혼약자에게 나는 끌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와 함께라면 아람데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 소박함과 애정에 아무런 느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귀족같지 않은 헌신으로 나를 대했다.


미안해, 질.

너가 나쁜게, 절대로 아닌데.


혼약때 있었던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때에 나는 이미 <신의 눈동자>에 너무 접촉한 것이다.


<에스텔>의 손이, 손가락이, 내 마음을 쥐고말았다.

속삭이는 <에스텔>이, 나를 좀먹어갔다.

그것은 일심불란한 모습으로 하나의 감정이 나를 휘몰아쳤다.


왜 그런지 전혀 이해가 가지않는 격정을 <에스텔>은 갖고있었다.

뱀파이어가 아니라, 순진한 질이라서?

아니면 진심으로 사랑하는 질을 봤으니까?


ーー귀족이 아니었더라면 진심으로 대했을 텐데.

그래, 내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처음으로 갖게 된 감정이었다.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는 애정이다.


『사랑하고 있어, 사랑해, 사랑할게!』

『상냥한 질! 나를 존중해주는 질! 사랑스러운 질!』


설마 <에스텔>이 질을 사랑하게 되다니.

또 다른 내가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나는 초조했다.

이대로라면 내가 온통 뒤덮여 버릴 것같았다.

질에대한 사랑으로 압사당할 것 같다.


그러니까ーー크롬백작과 그 배후의 교단에 다가갔다.

내가 나로서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크롬백작의 사랑을 자각했을 때는 나는 나로 있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나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에, 야망에, 열정에 매달렸다.

놓아버린다면 되돌릴 수가, 내가 이미 없어져버리니까.


그리고 크롬백작이 죽었을 때ーー나는 실이 끊어졌다.

그 때부터 나는 반은 <에스텔>이었다.


<신의 눈동자>를 건네주고 사랑을 속삭이듯이 질에게 매달렸다.

불쌍한 질, 나보다도 당신을 사랑하는 <에스텔>이 있는데.


그래서 말했다ーー너의 사랑을 받고 너무 힘들었다고.

그것은 <에스텔>을 향한 말이었다.


 ……<신의 눈동자>를 건네주고 며칠이 지난 지금, 나는 겨우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느껴졌다, 아람데드왕도의 지하에서 <에스텔>이 팔을 뻗는 것을.

1000년의 시간을 넘어 그녀는 되돌아왔다.


그리고 <에스텔>를 쫓는 사람도 가까워지고 있다.

교단이 또 다른 <신의 눈동자>를 노리고 봉인을 파괴하러 오고있다.


그렇게 된다면 나도 끝이다.

아아, 이제…………남은 건 하루인가.


그 정도가 지나면 결말이 날 것이다.

자업자득……그래도 나는ーー모든 것이 미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무섭다.


<에스텔>은 질이외의 모두를 미워하고 있다.

질밖에 필요 없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니까 <에스텔>은 자신의 일부를 질에게 전하고 도망가게 한 것이다.

질만은, 그만은 살아남기를 바랬으니까.


<신의 눈동자>를 만든 사람, 교단에 숭배되는 사람, 5명의 신에게 쫓기는 사람.

모든 몬스터를 만들어내고 과거 대륙을 황폐화시킨 여신.


죽음의 신, 에스텔.


나 이외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른채.

<에스텔>은 이미, 내 안에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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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프롤로그가 끝난 느낌이네요.
캬.... 슬슬 재밌어지는 것 같아서 기분좋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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