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날개가 우수수 떨어지는 가운데 장신의 레나르는 느긋하게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전혀 경계하지 않고 가치를 매기는 듯한 눈이 날카롭다.


「질남작하고 엘프……인가. 그란초가 설마, 실패한건가? 세월을 헛살았구나」


레나르가 평가하는 동료의 감상이 신랄하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다.

레나르는 어딘가에서 상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그것은 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꿈속에서ーー레나르가 <신의 눈동자>를 꺼낸 장본인이다.

분명 선두에서 지휘하는 자가 레나르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별로 내키지 않지만……어쩔 수 없지. 나는 싸움에 맞지 않지만……」


「……이제 나를 해방시켜줄거야?」


네루바가 레나르를 힐난했다.


「헛소리하지마라……우리들이 거두지 않았으면 죽었을 주제에. 동료를 구하고 싶다면……따라라」


마력의 격류가 레나르에게서 해방된다.

숲의 안개가 급속도로 맑아져간다.

레나르는 검은날개를 남기고 도약했다.


아니, 반대로 여기ーー내가 있는 어딘가에 안개가 몰려들고 있다!

마력의 농도가 진해지면서 내 붉은 피가 흩어졌다.


나와 네루바만 갑자기 안개속으로 격리되었다.

우리들의 주위에 안개가 짙어지면서 시야가 닫힌다.


레나르의 목소리가 안개의 장막밖에서 들린다.

아무래도 나와 네루바의 일대일 싸움을 시키고 싶은 것 같다.


「나는 엘프의 상대를 하겠다……미자리도. 네루바, 너는 질남자의 상대를 해라」


「……하고 싶지 않아. 아무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


아까까지와는 달리 네루바에게서 명백하게 거절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하라는 거다. 같은 나이, 가족을 잃는 사람들끼리……서로 죽인다면 불필요한 고민도 사라지겠지. 진정한 대주교에 다가갈수 있다……. 게다가 그란초를 쓰러뜨린 상대하고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네루바가 천천히 일어서면서 안개가 폭풍처럼 소용돌이 친다.

날개달린 유령들이 네루바의 날개가 펄럭일 때마다 등에서 떠오른다.


무수히 많은 유령이 모인 안개와는 반대로 네루바에게서 떨어져서 날고 있다.


「옵니닷!」


엘리자의 목소리가 짙은 안개너머에서 들렸다.

저쪽에서도 싸움이 시작된 것같다.


「하아……미안, 질남작」


네루바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용당하고 있는거야?」


「발목을 잡혔다, 라고 하는게 맞을거야. 숲의 안개는 여기말고는 없을거야. 그래도……나는 자유롭게 될수없어」


진심으로 싫다는 듯이 네루바가 내뱉는다.


「심리적인 구속은 약해졌지만 반대로 신체는 더 구속이 심해졌어……. 미안하지만 멈출 수 없어」


네루바가 허리의 단검을 빼낸다.

미스릴의 빛이 안개에 반사된다.


「레나르는 저런 녀석이야……싸움이 서툰 것은 사실이겠지. 그래도 유령을 내 동포를 빼앗아 싸울수도 있어!」


안개가 걷힌다면 싸울 이유는 없다.

레나르만 쓰러뜨린다면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안개의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 힘으로는 무리다.

돌파할 수 없으니 둘이서 결착을 짓는 수밖에 없다.


그란초의 이름을 너무 일찍 꺼냈을 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채 조종하는 것이 레나르의 힘이라면 당연히 그란초를 쓰러뜨린 나는 경계받는다.


그래도 어느 의미로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네루바를ーー어떻게든 해주고 싶다.


잠깐동안이었찌만 다른사람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도 한걸음 잘못했으면 그와 같이 그란초에게 조종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유령의 관한 것도 있다.

네루바를 막는다면 유령도 가만히 있을 것이다.


「네루바, 너의 이야기는 어디까지……진실이야?」


「……전부야. 아……이젠 안되겠어. 멈출 수 없어!」


네루바가 날아올랐다.

칼이 번뜩이며 나를 베려고 했다.


나는 팔의 피를 굳혀 팔보호대를 만든다.


「큿……!」


네루바가 내 배를 차올린다.

아픔이 몸을 울렸다.

빠르다, 훈련된 움직임이었다.


버티지 못하고 나는 지면으로 쓰러졌다.

내 위에 네루바가 올라탄다.


양손으로 칼을 잡고 내 얼굴에 내려찍는다.

피가 회초리로 변하며 네루바의 팔과 칼을 함께 얽는다.


그대로 왼손에서도 피를 뽑아내며 채찍을 만든다.

네루바가 몸을 안개로 바꾸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야……?」


「순간이동은, 그렇게 쉽게 사용할 수 없어……본래라면 수명이 줄어들어. 내가 죽으면 모두는 되살아날 수 없어……!」


슬픈 목소리로 네루바가 외친다.

나는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접근한 지금이라면 방해할 수 없는 지금이라면!


<신의 눈동자>를 사용한다면ーー지금이다!

나는 가슴에 스킬의 집중력을 할애했다.

붉은 빛이 <신의 눈동자>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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