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흘린피가, 바닥에 스며들면서 발판이 된다.

피의 갑옷과 같은 방식이다. 신체에 의지하지 않고 스킬을 활용하는 것이다.

 

「……읏!」

 

지금처럼 흔들리는 속죄의 제단위에서 나름 도움이 되고 있다.

손을 대지 않아도 될 정도, 인가.

 

게다가 크라켄의 촉수가 이미 빠져나와서 그런지 처음보다는 흔들림이 적어졌다.

그래도 흔들림은 멈추지 않았고 촉수가 휘날릴 때마다 왕도도 떨고 있다.

 

나는 시간은 벌기 위해서 더욱 앞을 걸어갔다.

힐끗하고 엘리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작게,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엘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노림수를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이다.

 

「갈게, 엘리자……!」

 

「알겠어요, 질님!」

 

그대로 엘리자는 엘리스와는 반대방향, 즉 언덕 끝쪽으로 뛰어나갔다.

잿빛으로 물든 언덕에서 자줏빛의 마력이 모여들었다.

내 피도 그 곳으로 흘러들어갔다.

달리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나는 엘리스의 시선을 계속 붙잡아둔다.

 

「도망치게 했을 뿐이야, 이제 너와 나만의 싸움이야」

 

「흥……뭐, 방해하는 사람이 사라지는건 나쁘지않아」

 

처음부터 엘리스가 엘리자에게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었다.

언덕에 있는 것은 3명뿐인데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엘리자가 도망친다해도 굳이 쫓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보이는 곳이라면 피의 길을 꽤나 빨리 만들고 있었다.

엘리자는 그 길로 언덕끝에 도달하더니 ーー뛰어내렸다.

 

오르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내려가는 것은 엘리자의 우수한 마력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저 크라켄으로 뭘 하려는 거지?」

 

「살육」

 

엘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즉답했다.

거기에는 일절 망설임도 주저도 없다.

 

「내 손으로 아람데드를 부숴줄게. 그 다음에는 가까운 나라부터, 철저하게 파괴할거야……당연하잖아? 너 이외의 인간들은 필요없으니까」

 

「……내 소중한 여동생도?」

 

「아아……그건 특별히 제외시켜줄게. 질의 혈족이니까. 소중하게 생각한다는건 알고 있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나는 이해심도 인심도 좋은 신님인걸」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감정을 듬뿍담아 엘리스가 말했다.

나는 신과 인간의 차이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도무지 말이 통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녀의 흥미는 나뿐으로, 다른건 신화에 나온대로다ーー파괴오 죽음을 즐기는, 악신.

 

나는 언덕에 펼쳐진 피의 일부분을 갑옷을 바꾸었다.

엘리스도 입맛을 다시며 춤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는 듯이 오른쪽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늘은 자줏빛의 마력과 크라켄의 촉수로 덮여있다. 언덕의 제단부근은 나의 피로 젖어있다.

 

「질, 어쨰서 나와 싸우려는 거야. 살짝 슬퍼지려고 하잖아……이길거라고 생각해?」

 

「이길 수 없더라도, 나는 싸울거야……알고있잖아」

 

「당연하지, 그게 질인걸. 알았어, 잠깐 같이 춤을 춰줄게」

 

엘리스가 자연스럽게 나에게 돌진을 한다.

뱀파이어답게, 정말로 재빠른ーー실라이상으로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나는 지면의 피를 굳혀서 엘리스를 잡으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다.

 

나는 피의 칼을 휘두르지만 엘리스는 여유롭게 피했다. 아니, 칼 위에 손을 대고는 미끄러지듯이 좁혀 들어온다.

 

그것은 분명, 사신 그 자체의 움직임이었다.

그대로 엘리스는 내 품으로 들어오더니 손바닥을 나에게 내질렀다.

 

마력이 담긴 일격이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무겁다.

하지만 이렇게 다가왔을 때는 나에게도 반격의 기회가 생긴다.

 

이미지는 날카로운 창끝이다.

갑옷의 가슴부분에 공격이 닿자마자 피를 이용하여 반격한다.

 

정면에서의 요격, 타이밍은 완벽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스는 곧바로 내 팔을 비틀면서 내 몸을 내던져버렸다.

 

날아간 나는 등쪽으로 떨어졌다.

피 웅덩이에 떨어져 붉은 물보라가 솟구친다.

흘러드는 것과 같은 엘리스의 움직임을 <혈액조작>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크읏……!」

 

엘리스는 뒷짐을 지면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역시 센스는 있네, 질……. 그래도 나와 춤추기에는 부족한거 같네?」

 

「아직이야!」

 

지면에 손을 붙인 나는 <혈액조작>으로 다음 공격을 가한다.

그 때, 하늘의 크라켄의 촉수가 쾅하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쓰다듬듯이 촉수가 지면에 닿는 것만으로도 돌로 만들어진 것들이 나무처럼 박살나버렸다.

 

「크라켄도, 이미 각성하고 있어……이제, 포기하는게 어때. 그러면 정말 편해질거야」

 

엘리스가 손을 들자 크라켄이 파괴한 곳에서 무수히 많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연기는 조금씩 번지더니 왕도까지 번졌다.

직감적으로 나는 그것이 고스트 짓이라고 직감했다.

 

압도적인 크라켄의 힘뿐만 아니라, 그 희생자를 바로 언데드로 만든다.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엘리스와 싸워 시간을 버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더 이상은 시간이 없어, 엘리자……!)

 

의지할 곳은 그녀뿐이다.

 

「어라……?」

 

처음으로 엘리스가 눈을 찌푸리며 속죄의 제단을 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도 금방 알 수 있었다.

 

흔들림,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언덕이 터지며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군열이 생긴다.

흔들림만 있었던 이제까지와는 다른 더욱 더 큰 힘이 속죄의 제단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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