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재상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작으면서도 호화스러운 칼집에서 칼을 꺼냈다.

창백한 칼날에서 마력의 파동이 전해져온다.

엄청나게 비싼 순수 미스릴의 나이프다.

고국에서도 왕족이나 그에 준하는 대귀족만이 가질 수 있다는 최고급품이다.


피를 나눠주는 것 자체는 일과로써 아에리아에게도 해주는 것이다.

알마재상의 부탁이라면 더욱더 거절할 수 없다.


「아……그래도, 작은 접시가 없습니다」


그렇다, 은의 그릇은 아에리아가 가져간 채였다.

평소라면 씻어서 밤에 돌려줬을 것이다.

곤란하네, 초라한 물품을 꺼낼 수도 없고.


「……그릇이라면 필요없어요」


「네……? 하지만……」


「괜찮으니까, 이쪽으로」


알마재상이 까딱까딱 손짓을 한다.

무슨 말씀이신 걸까. 나는 바로 옆으로 갔다.


알마재상은 다가선 내 오른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능숙하게 나이프를 가진채 몸이 닿지는 않았다.


정돈된 손가락 끝은 매끄럽고 섬뜩하기도 했다.

그대로 내 손가락을 하나씩 확인하는 듯이 쓰다듬어 갔다.


조금 간지러웠지만 참자.

점점 알마재상이 요염하게 보인다.


「손가락을、괜찮을까」


쓱하고 내 손을 알마재상은 입 높이까지 가져갔다.

혹시 직접 흡혈을 하려는 것은…….


냉기가 손에서 팔로 올라온다.

반면 손끝에서 직접 흡협하는 것은 처음이다.


몸의 가장자리라면 흡혈이라고 간주하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아, 네……알마님」


「쿠훗, 둘 뿐일때는 알마로 괜찮아요」


장난스럽게 그렇게 말하며 내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사랑스러운 듯 만졌다.

알마가 젖은 눈동자로 손가락을 잡고 칼로 베었다.


붓처럼 매끈한 감촉뿐이었다.

아픔은 없고 검지손가락의 제 2관절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잘 마실게요」


이미 도취되어 알마는 내 손가락을 입에 머금었다.

알마의 입안은 강물처럼 차갑다.

혀가 손톱끝을 핥으며 피를 빨아들였다.


「응……츄……후우」


일부러 하는 것일까 알마는 소리를 내면서 피를 빨아들였다.

아니, 피뿐만이 아니었다.

손가락 전체를 야하게 였다.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자 알마는 천천히 손가락을 입에서 일단 떨어뜨렸다.

침이 태양빛에 반짝이며 선을 이었다.


「별로……맛에는 변함이 없는 듯 하네요」


약간, 실망하는 것 같다.

그렇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순간 주저했지만 어차피 아에리아 경유로 두번째 스킬때문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것이다.

이제와서 숨기려해도 의미가 없다.


일단은 나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달아져라, 달아져라.

녹는 듯이 내 피에 중독되도록.

……엘리스가, 빠져들 정도로.


전에는 이것으로 괜찮았을 것이다.

의식을 돌리자 스킬은 발동했다.

신의 선물을 쓰는 것은 간단했다.


「응……조금, 냄새가 달라졌어요」


손가락에서 새로운 피가 흘러나왔다.

알마는 곁눈질을 하고 혀를 내밀어 피를 떠냈다.


그대로 떠낸 피를 천천히 혀로 음미했다.

번쩍하고 알마의 눈이 빛났다.


「맛있어요……! 믿을 수 없는 정도로 순하고 맛이 깊어요」


나에게 피의 맛을 말해도 잘 모르겠지만.

미식가인 알마도 인정할 정도의 맛인 것 같다.


잠시동안 손가락에서 빨아먹는데 알마는 전념했다.

물소리만이 실내에 울린다.


마치, 현실감이 없다.

일국의 재상이 그저 손가락을 빨고 있다니.

나는 그 동안에 서있을 수 밖에 없다.


「질님, 손이 허전한 거 같아요」


말하면서 알마는 내 빈 왼손을 잡고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대었다.

불의의 행동에 나는 숨을 멈췄다.


「쓰다듬어 주세요, 질님」


「그, 그것은……」


「저는 머리를 누가 만져주면 차분해져요」


알마의 머리카락은 마치 고급의 깃털같았다.

딱딱한 듯하면서 폭신폭신했다.


자그마한 귀가 기분 탓인지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

마음껏 만지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뒤가 두렵다.


그래도 불평을 듣지 않을 정도는 쓰다듬어보자.

새를 만지는 듯이 기분이 좋다.


그렇다하더라도 과하게 하면 어떤 말을 들을지 모른다.

애초에 왜 갑자기 흡혈을 하고 싶어했는지도 수수께끼다.


「후……으응……」


한동안 핥다가 알마는 핥는 것을 멈췄다.


침범벅이 된 손가락을 알마는 정성스럽게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금으로 자수가 된 비싼 물건이었다.


아에리아가 보통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유마술이 새겨져있다.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는 감각이 없어진다.


나도 알마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알마는 뺨도 약간 분홍 빛으로 물들어 있다.

하얀 머리카락과 대비되어서 더 두드러진다.


「잘 먹었습니다. 굉장히 맛있었어요」


「……네」


설마 정말로 피를 마시러 온 것 뿐인건가.


「질님……감사합니다」


「아뇨,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알마는 허리를 펴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많이 가깝고 나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알마는 꼭 내 손을 움켜지고 휙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손을 잡을 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꼭 답례를 하게 해주세요, 질님」


그게 본제인가.

나를 데리고 나갈 구실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던가.


번거롭다고 생각했지만 뱀파이어 답지도 않았다.

내 피를 원했던 것도 절반은 진심일까.


어짜피 알마의 제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거부하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다.

속셈이 있어도 잔꾀를 사용할 사람은 아니다.


침을 삼키며 나는 알마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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