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아람데드왕궁 지하의 한 방이었다.


촛불이 비추는 것은 고르지 않은 돌의 표면이다.

습도가 놓고 이끼 냄새가 난다.

벽에는 지금은 희귀한 대형 괘종 시계가 비치되어 있었다.


오래된 듯한 방의 중앙에는 짙은 갈색으로 물든 나무침대가 놓여있었다.

팔을 벌리고 일부분만이 튀어나와 있는 십자형이었다.

이상한 것은 빽빽하게 뱀이 얽혀있는 듯이 마술식이 음각되어 있는 것이다.


크롬백작이 굵은 쇠사슬에 묶이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침대에 가로로 눕혀져 있다.검은 두건을 쓴 몇명이 부지런히 방을 움직였다.


「슬슬 눈을 뜨는게 어떤가요, 크롬백작」


침대 옆에 서있는 것은 아루마재상이었다.

흰색 머리카락과 옷이 유령같은 분위기를 냈다.


지루해하고 있었지만 눈만은 빛나고 있었다.


「우……므……」


마셨던 약때문인가 크롬백작의 의식은 분명치 않았다.


「깰 수 있게 해드려라」


「네!」


검은두건이 사슬에 닿았더니 쇠사슬은 끼익끼익 삐걱거렸다.

쇠사슬이 파고들어 크롬백작을 심하게 조른다.


「아, 크학!?」


「크롬백작, 좋은 아침입니다」


「네 녀석은――그리고、여기는……!?」


자유롭지 못한 머리를 돌려 크롬백작은 근처를 확인했다.

사슬도 털어버리려고 하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점점 크롬백작의 얼굴에 공포가 서려온다.

크롬백작도 모략이 판을 치는 귀족 출신이다.


일굴의 재상이 어두운 방에 가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짐작한 것이다.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크롬백작이 말한다.


「……나에게 손을 대면, 브람왕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아라, 별로 재미없는 위협이네요」


「지금이라면, 이 무례도 없던 것으로 해주지. 얼른 풀어줘라!」


아루마재상은 무심코 실소를 지었다.

검은 두건들도 덩달아 조롱의 웃음을 짓는다.


「후후후훗, 그게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이 할 소리인가요.  때와 장소를 잘 파악하지 못하시는군요」


「뭐라고……?」


「벌써 유언의 시간이에요. 크롬백작」


아루마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검은 두건이 팔 길이정도의 통을 가져왔다.

검은 것을 만지작거려 부드럽게 형태를 바꾸는 듯 했다.

크롬백작은 그 모양과 색에서 힐을 연상했다.


「어이, 무슨 짓을 할 생각이냐……그만둬라、네놈!」


떠들어대는 크롬백작을 무시하고 검은 두건은 통을 백작의 오른팔에 파묻었다.

순간, 타는 듯한 격통이 크롬백작의 팔에서 일어났다.


「최후의 정이에요. 설명해드릴게요」


들뜬 음석으로 아루마재상이 말하기 시작했다.

고양된 모습의 아루마재상의 별명을 크롬백작은 떠올렸다.


이르기를, 피투성이 재상 또는 왕족 살인.

아람데드왕국의 암부를 맡아 하얀 사신이라고 불리고 있다.

게다가 상궤를 벗어난 새디스트라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부터 크롬백작에게는 피양의 의식을 받게 하겠습니다. 오랜 규칙에 규정된 왕녀와의 혼약전에 필수적인 시련이에요」


아루마재상이 눈짓하자 검은 두건이 마력을 통에 넣었다.

통이 희미하게 옅은 불길한 보라색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동시에 피가 통에서 주룩주룩, 돌바닥으로 흘러나왔다.

크롬백작의 눈에 경악이 흘렀다.


「이、이것은……내 피!?」


「혼약에 걸맞는 스킬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피양의 의식이에요. 6시간동안 피가 흐르는 것을 견뎌낸다면 합격으로 간주합니다」


크롬백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면 물방울크기의 양밖에 떨어지고 있지 않다.

의외로 살아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루마재상은 이상하다는 듯이 크롬백작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무식한게 용감하다는 말이 지금 딱 들어맞네요」


「뭐라고……?」


「물방울밖에 안되지만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피는 무서울정도의 양이 되요. ……성인이라도 1시간정도면 죽음에 도달할 정도로」


「뭐!?」


「몇시간정도 지나면 당신의 피는 남김없이 바닥에 나뒹굴어서――바짝마른 뼈와 가죽밖에 안 남아요」


힐장의 통은 어떤 인간이라도 정확히 6시간정도로 몸에 있는 혈액 전부의 2배를 빼앗도록 되어있다.

평소라면 몇시간만에 빨아들여 말라죽게되는 것이다.


「뭐라고……! 잠깐, 멈춰라! 싫어!」


큰 소리를 내며 날뛰기 시작한 크롬백작에 상관없이 아루마재상은 설명을 계속했다.


「원래라면 다양한 시험이나 조사를 하기때문에 피양의 의식으로 죽는 사람은 오랜만입니다. 3백년정도 전에 바보같은 놈이 죽은게 마지막이에요」


옛날부터 다수의 사망자를 낸 악명높은 풍습이다.

참혹함 때문에 의식의 상세는 엘리스도 모를 것이다.

자국에서도 극소수의 뱀파이어밖에 모른다. 다른 나라의 인간이 아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크롬백작은 아직도 헛된 저항과 아우성을 질렀다.

죽음을 앞두고 꼴사나운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마술을 사용해도 쇠사슬때문인가 발동되지 않는다.

힐장의 통이 아주 조금 흔들릴 뿐이었다.


「질남작도 물론 피양의 의식을 받았어요. 당신과 비교하면 훌륭했습니다. 검은 두건의 사람들과 담소할 여유가 있을 정도 였으니깐요」


「시끄럽다!! 풀어줘라!!」


「엘리스님의 혼약자가 되는 거잖아요? 순서가 거꾸로 된 것 뿐이예요」


아루마재상은 말투에서 황홀함을 숨기지 않았다.

입맛을 다실 것 같았다.


「도와줘어어!!!」


크롬백작은 체면을 버리고 눈물을 흘리며 간청한다.


「내가 나빳어!! 무슨 짓이라도 할게!!」


마지못해 머리를 흔들며 결국 사죄를 입에 담았다.

혼약파기의 불쌍한 대가였다.


그것을 대하는 아루마재상은 엷은 미소를 띄우며 지켜볼 뿐이다.

사라질 목숨, 바보의 말로를 아루마재상은 차분히 음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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