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잠에 드는 시간이다.

아람데드왕도는 거리가 하얗게 물들자 정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브람왕국과 교단의 계속된 공격으로 인하여 평안했던 아침은 부수어지고 말았다.

아람데드왕궁에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긴박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여지껏 이정도로 무참한 공격에 왕도가 노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람왕국이 쳐들어오기 전에 원군을 이끌고 돌아와야하는 미자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마재상이 근위대를 이끌고 방위에 나서게 되었다.

 

며칠전에 알마는 황태자를 포함하여 왕족과 중신을 왕도에서 탈출시켰다.

브람왕국의 위험에서 떨어뜨려놓기 위해서다.

 

지금 막 속죄의 제단에서는 <신의 눈동자>의 결계를 펼치는 마술이 진행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엘리스도 자신의 집에서 근위병에게서 구속이 풀리고 있던 중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엘리스를 옥죄고 있던 띠가 하나씩 풀리고 있다.

 

알마의 지시에 의해 엘리스는 수비대의 일부분을 맡게되었다.

여성근위병과 중년의 시녀장들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엘리스는 자택에 있는 면면들을 공허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

질남작의 만류가 실패한 후, 엘리스는 다시 연금상태에 있다.

 

왕족으로써는 그녀이외에 카시우왕이 마지막까지 왕궁에 남아 최후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왕으로서의 긍지인지, 적에게 등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에스테르에 침식되고 있던 엘리스의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다.

시녀로부터 카시우왕이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전해들었을 때도 엘리스는 그저 냉소를 지었다.

 

(결국, 알마가 다 맡게되었네……)

 

빛이나고 있던 띠가 해제의 마술에 의해 풀어졌다.

엘리스는 자신안에 에스테르가 마치 장난감을 눈앞에 둔 것같은 아이처럼 기뻐하는 것을 느꼈다.

곧 에스테르가 고대하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멀고 먼 늪에서 엘리스는 저주받은 기도가 들려왔다.

 

속죄의 제단에서, 사령술사가 영창을 하며 기도했다.

엘리스는 그것을 마음속에서 무심코 중얼거렸다.

 

지고의 신으로서, 생사를 영원토록 지배하는 자여.

혼돈의 어머니로서, 애증으로 오랜시간 살아온 자여.

 

한소절만에 엘리스는 자신의 의식이 어딘가 바뀌는 것을 실감했다.

몸의 구속을 풀려가는데 손과 발이 저리고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사령술사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눈 앞에 떠오른다.

 

지금이야말로 그 몸을 일으켜

봉인을 부수고 강을 건너서

주의 하인으로서, 반딧불을 의지할지니.

 

엘리스의 구속은 전부 해제되었다.

거림칙한 구속구들은 근위병이 갖고있다.

손을 미세하게 떠는 시녀장이 멍하니 있는 엘레스에게.

 

「알마재상이, 왕궁앞의 지휘를 맡기겠다……라고. 서둘러 주세요」

 

지금 이 시간, <신의 눈동자>가 제단위에 올라가 로아의 손에 쥐어진 순간이었다.

엘리스는 자신이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빠지는 것을 느꼈다.

주위에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ーー누구? 아람데드왕녀의 엘리스? 아니면 죽음의 신 에스테르?)

 

자문자답하는 엘리스의 안에서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

그자야말로 에스테르라고 엘리스는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엘리스. 이제부터는 에스테르야. 당신의 혼은, 나와 동화되었어. 슬퍼할 필요 없어, 당신의 소원을 이뤄지니까!)

 

(소원……아람데드를 되찾는 것. 그리고 크롬백작을ーー)

 

딱 이정도만 떠올렸을뿐인데, 에스테르의 격한 감정이 밀려올라왔다.

 

(안돼, 그럼 남자는 안돼! 그건, 그 녀석은 내 힘을 노리는 도둑이야! 엘리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있잖아? 우리들을 정말로 생각해주는 남자를 떠올려봐)

 

「……왕녀님? 무슨일 이십니까……?」

 

반응이 없는 엘리스의 어깨를 시녀장이 흔들었다.

 

(……그만둬, 나는……나는 그를ーー)

 

(아아, 우리를 그렇게나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었어! 나는 그의 힘을 원하는게 아냐! 바라지 않는 사랑, 헌신하는 사랑, 영원한 사랑! 나는 그런 사랑을 원했었어, 천년도 넘게!)

 

(당신은……진심인거야?)

 

(진심이야, 나는 사랑받고 싶어!)

 

(신, 인데도?)

 

(어……몰랐어? 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 경외한다고 해도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아)

 

엘리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가장 먼저 사랑해준 사람은ーー」

 

말을 끝까지 잇지 못 했다.

에스테르가 엘리스의 의식을 전부 물려버렸다.

 

「괜찮으십니까, 왕녀님……?」

 

「응, 괜찮아」

 

손을 슬며시 흔들었다.

엘리스의 방에 반투명한 팔이 수십개 나타나 근위병과 시녀들을 포옹하고 있었다.

 

「하아……좋아, 현세의 냄새네」

 

고개를 돌려, 에스테르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소리도 내지 못 했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에스테르는 주위의 시선을 신경쓰지도 않은채 전장으로 변한 왕도를 내려다보았다.

감도는 신선한 죽음의 향기를 맡는다.

 

게다가 에스테르는 <신의 눈동자>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질……당신을 느낄 수 있어」

 

분명히 있다, 그 곳에 와 있다.

질이, 사랑스런 사람이 그 곳에 있다.

 

모든 것이, 에스테르의 생각대로 진행되었다.

묘한 기운이 풍기는 이 공간에서 에스테르는 주먹을 쥐었다.

 

반투명한 팔이 방안에 있는 전원을 잡아뭉개어 피덩어리로 만들었다.

단 한마디의 비명도 없이, 그저 시체로 전락했다.

 

에스테르에게 있어서 자신을 배제하려했던 놈들의 자식들이었다.

죽여도 당연한 존재였다.

고기덩어리가 가득 찬 방안을 기쁜듯이 걸어다니며 에스테르는 즐거운 듯이 말했다.

 

「지금, 갈게……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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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취직하고 게을러졌던 저를 질책해주세요 ㅠㅠ

 

어느정도 회사에 적응도 했고 다시 시작해보겠습니다.

 

기다리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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